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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Jeep Story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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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Jeep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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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변별력(辨別力)은 어떤 시험 평가에 있어
문제의 난이도와 그로 인한 격차 등을
운운할 때 쓰이는 단어로 알고 있다.

그러나 변별력의 정확한 뜻은,
사물의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가릴 수 있는 능력이다.

, 우리가 한 번 뿐인 인생을 살면서
가슴 깊이 품고 살아도 좋을 덕목이기도 하다.

단 변별력은
어느 한 순간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채워 진화해야 한다.

Jeep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즐기는 서미소랑도,
변별력 하나만큼은 절대 지지 않는다.
특히 언어로 말이다.

이름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녀와,
이제 막 우정을 싹 틔우고 있는
Renegade를 만나봤다.


서미소랑 I 영어 방송 아나운서
국제 행사 영어MC

아리랑TV·EBS·KBS·TBS
다수 프로그램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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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ad Not Ta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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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에서는 치과의사,

한국에서는 영어 방송 아나운서라는
독특한 이력의 서미소랑은,

이제 막 Renegade의 오너가 되었다.
그녀가 Renegade와 나누는 

찐우정 라이프, 따라가 보자.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은 전 세계에 걸쳐 오래도록 사랑받는 명시다. 숱한 명인들에게 인용될 만큼 다양한 해석으로 풀이되기도 하지만, 제목만으로도 선택하지 않았던 길에 대한 미련이 느껴지는 것은 모두 비슷할 듯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갈림길에서 망설여야 하는 우리네 고달픈 삶이, 100년을 앞서 살았던 이들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선 작은 위안까지 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가지 않은 길, 즉 발 한번 내딛지 못했던 그 길에 대한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혹자는 걸어왔던 길을 후회하기도 하고, 혹자는 잘못 선택한 길이 불행하다는 넋두리를 하기도 한다.

여기에 한 부류를 더 소개하자면, 길은 어차피 여러 갈래니 직진도 했다가 샛길로 빠져보기도 하고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후진도 마다않는 자다. 서미소랑, 그녀가 딱 그랬다. 서른여섯 해를 넘나들며, 누군가 갔던 길을 따르거나 편해 보이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 길 저 길 좌충우돌하며 길 위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익혀, 누구보다 확고하게 인생 변별력을 키웠다. 그리고 이제 그 변별력에 깊이와 폭을 넓히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서 살아온 20년의 시간을 접고 한국에서 억척스러운서미소랑으로 달리는 중이다. Renegade와 좌 자전거의 호위를 받으면서



믿음·소망·사랑, 그래서 서미소랑이에요. 섭외 전부터 궁금증과 호기심이 가득 찼다. 서미소랑이라는 이름에는 과연 어떤 히스토리가 담겨 있을까. 그녀는 주변을 밝히는 조명처럼 환한 미소와 함께, 독실한 크리스천인 부모님께서 한글 이름으로 지어주신믿음·소망·사랑이라고 명쾌하게 답했다. 절로 호기심이 탐구심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일찌감치 글로벌 시대가 될 것을 예감하신 아버지께서 발음까지 고려한 이름이란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무려 8살 때 고국을 떠나 뉴질랜드라는 낯선 땅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다시 호주로 이주해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치과의사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고 당당히 호주에서 사회인으로 안착했다.

완전 방목형 페어런팅을 추구한 부모님 덕분에 어린 나이에 호적 메이트인 오빠를 울타리 삼아 생명력 강한 잡초처럼 성장했으니, 경험치와 스킬로만 따져도 서미소랑은 이미 만렙이다. 대부분 이쯤하면 다 이뤘구나 하며 속도를 늦출 법한데, 그녀는 달랐다. 미소랑아, 소랑아, 미소야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다양성만큼이나 한 가지로는 도무지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버지도 미처 생각지 못한 뜻이 이름 속에 하나 더 있다면서, 서미소랑이라는 이름의개인 브랜딩을 꼽았다. 어느 누구와도 겹치지 않는 네이밍으로 오직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었고 이는 진짜 축복이었다며 환하게 웃는다. 이름대로 산다는 옛말, 하나도 틀리지 않다.



저는 이 세상에 하고 싶은 게 너무너무 많았어요. 아주 어린 나이에 낯선 땅에 발을 디딘 것은 서미소랑에게 오히려 득이었다. 아직은 세상이 말랑말랑하기만 한 또래 아이들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고, 학원과 인터넷 강의 대신 음악과 기계 체조 등 예체능을 배우며 일상을 즐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뉴질랜드와 호주 교육권에서 누릴 수 있는월반이라는 혜택으로, 그녀는 남들보다 잘하는 과목은 학년을 당겨 쭉쭉 치고 나갔다. 급기야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동시에 다녔고, 교환 학생으로 스웨덴의 최고 명문대인 카롤린스카 대학교(Karolinska Institutet)까지 건너가 메디컬 리서치 분야를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의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를 결정할 만큼 권위 있는 곳에서의 공부를 꿈꿨으나, 막상 경험해 보니 진짜 원하는 것에 의구심이 들어 다시 호주로 돌아왔단다. 그때 메디컬 리서치를 접고 선택한 것이 치과대였고, 어렴풋이 어린 시절 만났던 교정 담당 치과 선생님에 대한 기억도 한몫했다고 고백했다.

더불어 온 세상이 마냥 신기하고 해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는 그녀는, 어떤 공부든 노력에 대한 성취감과 결과가 있기 마련인데 그런 면에서 문학보다는 의학이 훨씬 쉽고 직관적이었단다. 어리광 부릴 나이에 독립까지 했으니, 스스로 처한 환경을 재빨리 인지하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려 악착같이 공부에 매달렸던 것이다.

상상해 보라. 내가 속한 사회에서 다름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서바이벌이라는 본능이 움트기 마련이다. 서미소랑, 그녀가 다름 속에서 나음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갈고 닦았던 시간들이, 이제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문득 젊을 때 해봐야 하는 일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미소랑은 치과의사로서의 삶은 대만족이었단다.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 안정적이었으며, 함께 일하는 팀원들과 환상적일 만큼 손발이 맞아 신나는 직장이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 그녀는 이 일은 나이 들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자각이 일었다.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던 부모님과의 일상, 나와 같은 사람들이 사는 고국, 뿌리 없이 떠다녔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이 절실했던 것이다. 이내 그 어떤 기약도 없이, 무작정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비로소 제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편안함을 느꼈다. 팽팽했던 긴장이 느슨해지며 스스로 무장 해제됐고, 마흔 살까지 한국에서 커리어 외도를 해보기로 공식 선언하기에 이른다.

모터쇼 모델, 드라마 엑스트라, 피팅 모델, 전단지 돌리기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시도하면서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탐험했다. 우연히 대기업 행사에 갔다가, 외국인 VIP 투어를 담당한 발표자가 펑크를 내는 바람에 급하게 현장 투입되면서 서미소랑의 운명은 뒤바꼈다. 영어 방송 아나운서. 무림의 고수처럼 갈고 닦은 실력이 때맞춰 찾아온 기회를 냉큼 낚아챈 것이다.

지금은 시사 관련 영어 토론 진행과 영어 관련 교육 프로그램, 기업 IR 피칭은 물론 전공을 살린 치과 관련 교육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활약 중이다. 이러다 마흔 넘어서도 호주 대신 한국에 머물지 않을까 싶다는 서미소랑의 너스레는, 어쩐지 절반의 진심처럼 들린다.



안식년을 갖고 나니, 제 손에 Renegade가 있더라구요!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책 속에만 파묻혀 지내던 그녀는 한국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브레이크 없이 달렸다. 방송이 늘어나면서 이동 거리가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차가 절실히 필요했다. 일반 SUV 차량 구매 예약 후 계약금까지 넣었지만, 심경의 변화로 모두 취소하고 급 안식년에 돌입했다.

코로나 때문에 8개월밖에 못 채우긴 했으나, 포르투갈과 스페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중국, 뉴욕을 넘나들었다. 특히 8kg 배낭을 메고 자전거로 하루 8시간씩 달리며,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순례길 종주에 성공했다.

안식년 후 본격적으로 차 구매에 매달려 몇 주 동안 여러 종류의 차를 경험해 보고 고민했단다. 최종적으로 그녀의 선택은 Renegade! 결정적 이유를 묻자, ‘Renegade’가 제일 정이 갔어요. 맞다, 좋은 덴 이유 없다고 했지 않은가. 오너로서의 소감을 들어보니최최최상이라며 더없이 만족스럽고, 귀여운 듯 듬직한 듯 두 가지 매력을 모두 가진 데다가, 전고도 높아 주행 시 시야 개방감도 좋아 심적인 안정감까지 손꼽는다.

Renegade
를 만나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셈이니, 만날 사람은 만나게 돼있고 가질 차는 갖게 돼있다! Renegade Born to be Wild 본능이 오너 서미소랑과 똑 닮았다.


제 인생의 첫 실패는 운전면허 시험이었어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했던가. 상위권에서 한번도 밀려나 본 적이 없는 그녀가, 호주 운전면허 시험에선 세 번이나 낙방했다. 그 어렵다는 수동 변속 운전면허이긴 했지만, 결국 자동 변속 운전면허로 변경한 후 통과했다고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국제 운전면허증이면 충분한 한국에서도, 그녀는 한국식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다시 운전면허 시험을 쳤다고 하니, 서미소랑의 모험과 도전 근성, 인정! 4년 전부터 시작한 자전거에 푹 빠진 그녀는 한강 라이딩을 자주 다니는 편인데, Renegade만한 이동수단이 없단다. 적재 공간이 넓어 뒷좌석을 눕히고 통째로 싣기도 편하고, 바퀴를 분리해서 5대의 자전거를 실어본 적도 있다며 누구보다 자랑스러워 한다. 제법 Jeep 마니아답다.



어제보다 나은 하루, 주어진 오늘을 열심히 살면 돼요. 커리어 외도 중 더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지 물으니, 뜻밖의 답변이 복하게 하루를 사는 것 밖에 없어요, 진짜!’ 계획했다가 좌절도 해봤고, 생각도 못한 좋은 기회가 오기도 했으니,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참을 줄 알게 됐다면 그 또한 내면의 성장을 이룬 것이라나. 서미소랑의 소탈한 답변은 그래서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더불어 이제 막 합을 맞춘 Renegade와 차박을데피니틀리시도해 보고 싶고, 오프로드도 쉬운 단계부터 조금씩 즐겨보고 싶다고도 했다. 그녀는 인터뷰 중 아직 한국어가 많이 서투르다며 언어 콤플렉스를 언급했지만, 실은 유창한 영어 실력 못지않게 세상 우아하고 깔끔한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러니 언제 돌아가게 될지 몰라 방 한쪽에 반쯤 열어둔 서미소랑의 트렁크, 이제 과감하게 닫아둘 때가 된 것 같다.